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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강헌 사건 리틀 전두환 무전유죄 유전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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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SBS 파일럿 프로그램 ‘스페셜-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지난 1988년 TV 생중계 인질극으로 화제가 됐던 ‘지강헌 사건’이 전파를 타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지강헌 사건이 방송을 통해 재조명돼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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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강헌 사건은 1988년 10월 8일부터 10월16일에 걸쳐 서울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됐던 25명 중 12명의 미결수들이 호송 도중 교도관들을 흉기로 위협하고 권총을 빼앗아 집단 탈주한 사건이다.

1988년 10월 8일, 영등포교도소에서 대전과 공주 교도소, 공주치료감호소로 이송되던 25명 중 12명이 교도관을 흉기로 찌르고 탈주하여 서울시내로 잠입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달리, 이들은 본래 흉악범이 아니라 잡범이었는데 사회보호법에 의한 보호감호제도 때문에 징역형을 마치고도 보호감호처분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560만 원 절도를 저지른 자신은 무려 17년을 살아야 되는데, 알려진 것만 70여억 원을 횡령한 전경환(전두환의 막내동생)이 겨우 7년인(실제론 3년 3개월 만에 풀려남) 사실에 불만을 가지고 탈출한 것이다.


이 중에서 최후까지 잡히지 않던 5명 중 4명은 경찰의 검문을 피해 서울시에서 은신처 여러 군데를 전전하다 10월 15일 밤 9시 40분경 서대문구 북가좌동[5] 고모 씨의 집에 잠입해서 고 씨의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이 인질극은 당시 TV로 생중계되었으며, 인질극을 벌인 범인 4명은 다음과 같다.
지강헌 (당시 34세, 1954년생)
안광술 (당시 22세, 1966년생)
강영일 (당시 21세, 1967년생) - 생존
한의철 (당시 20세, 1968년생)

 
인질로 잡혀있던 고 씨가 새벽 4시쯤에 탈출하여 인근 파출소에 신고했고, 곧바로 경찰 병력 1천여 명이 집을 포위했다. 인질범들은 새벽 4시 40분부터 경찰과 대치하여 실랑이를 벌이다가, 낮 12시경 강영일이 협상을 위해 밖으로 나와있을 때 한의철과 안광술이 지강헌이 가지고 있던 호송교도관 김○○ 교사(당시 54세), 김○○ 교사(당시 36세)의 총을 빼앗아 자살했고 지강헌은 경찰에게 비지스의 홀리데이카세트테이프를 요구한 뒤 노래를 들으며 창문을 깨 유리조각으로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했다. 자살 시도 직후 경찰특공대원들이 집으로 진입해 인질로 잡혀있던 가족은 모두 무사히 구출되었다. 그리고 지강헌은 깨진 유리로 자신의 목을 찔렀는데 이를 지켜본 인질이 비명을 지르자 경찰특공대가 인질이 위험한 걸로 판단하여 즉각 진입하여 무방비 상태의 지강헌에게 다리와 옆구리에 총을 발사하였으며 몇 시간 뒤 병원에서 과다출혈로 숨졌다.


당시 '홀리데이'를 요구한 지강헌의 요구에 경찰이 실수로 스콜피온스의 홀리데이를 전달했다가 급하게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다시 전달했다는 소문도 있다. 일단 사건 당시 현장에서 지강헌이 들었던 노래는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맞다.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울려퍼질 때 지강헌이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 당시의 방송 녹화테이프에 기록되어 있다. 이 사실은 2006년 SBS의 영화프로그램 'TV박스오피스'의 '영화비하인드' 코너에서 확인되었고, 또한 관련 영상은 유튜브 등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당시 검거되지 않았던 5명 중 인질극에 가담하지 않은 마지막 탈주범 김길호가 탈주한 지 1년 9개월 만인 1990년 7월 1일에 체포되면서 탈주극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

유념해야 할 것은 지강헌 일당이 무죄가 아니라는 것. 1989년 개정 이전의 사회보호법에서 보호감호 기간을 최대 10년으로 규정한 탓에 이들에겐 10~20년에 이르는 매우 과중한 형량이 내려졌다. 그러나 전두환의 동생인 전경환은 무려 수십억 원대 사기와 횡령으로 1989년 징역 7년을 선고받았으나 실제로는 고작 2년 정도 실형을 살다가 풀려났다. 지강헌 등은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는 특혜를 받고, 돈 없고 권력이 없으면 중형을 받는 대한민국의 불평등한 현실에 분노한 것이라는 게 명분이었다.


다만 지강헌 탈주사건의 경우, 여타 범죄자들의 자기 합리화만으로 몰 수가 없다. 일단, 당시 인질 및 경찰들이 증언한 바로는 그들은 예상 밖으로 대단히 신사적이었으며, 그들의 요구는 '방송'이었지 '탈주'가 아니었다. 사실 지강헌 일행은 숨어 살다가 집주인이 몰래 도망친 탓에 인질극을 벌인 것이고, 그러다 보니 방송을 탄 것이다. 지강헌의 노트


인질극을 벌이기는 했지만 범인들은 "죄송하다 조금만 참아달라", "금방 끝날테니 이해해달라." 면서 두려워하는 인질들을 달랬고, 경찰들 앞에서 인질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고성을 지르면서도 인질에게 귓속말로 "절대로 다치지 않게 할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최대한 인질들을 배려하려 했다. 그런데 실제 영상에서 보면 같이 탈주한 동료에게는 과격하게 대했는지 강영일만큼은 권총 한발을 위협 사격 하면서까지 자수를 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강영일은 교도소내에서부터 지강헌과 친했고 이미 도주할수 없는 상황인것을 알고 자수하게 만들어 살리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탈주극을 벌인 12명 중 사망한 사람을 뺀 9명 중에 현재 수감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가장 마지막에 잡힌 김길호와 지강헌 인질극 중 유일한 생존자인 강영일로 나머진 출소 후 재범으로 다시 교도소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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