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칠 프로필 고향 아내 꼬꼬무 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은 국가유공자로 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하여 독도 수호에 앞장선 인물이다.
1929년 일제강점기에 울릉도에서 출생했다.
조선국방경비대에 입대해 군인이 되었고 6.25 전쟁에도 참전했다 부상을 당해 전역했다.
이후 울릉도 어민의 어로작업을 방해하는 일본의 무장순시선과 일본인의 독도불법 침범을 막기위해 1953~56년까지 울릉도의 6·25참전 용사 30명과 함께 독도의용수비대를 창설했다.
독도의용수비대는 일본 함선보다 열악한 무기로 무장한 상태여서 나무에 검은색 칠을 하고 가짜 대포를 만드는 등의 기지를 발휘하며 일본 순시선을 몰아냈다. 특히 1954년 11월 21일 독도대첩 전투를 성공적으로 지휘해 일본 해상보안청의 침공을 격퇴시켰다. 당시 경비선 2척의 일본과 맞서 소총과 박격포로 일본에 16명의 사상자를 내며 승리했다.
이들은 1956년 12월 30일 독도방위 업무를 국립 경찰에 인계할 때까지 3년 8개월 동안 독도를 지켜내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이뤄냈다.
오늘날 독도를 실효적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은 33명의 독도의용수비대원의 헌신의 결과이다.
이때의 공로로 1966년에 5등 근무공로훈장을 받았다. 이후에도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임을 알리며, 경상북도에 독도개발계획서를 내는 등 꾸준히 독도 수호 운동을 진행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는 그의 활동이 일본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준다고 부담스럽게 여겼고, 결국 1974년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부인 박씨에 따르면 다시는 글을 못 쓰게 오른손까지 부러뜨렸다고 한다. 심지어 이후 들어선 전두환 정부에서도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다.
말년에는 폐암 치료를 받으며 잡지에 글을 연재하기도 하다 1986년 서울중앙보훈병원 병상에서 5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후에는 2005년 독도의용수비대 지원법이 제정되면서 홍순칠을 포함한 의용대원 모두 국가유공자가 되었으며,1996년 보국훈장 삼일장을 추서받았다. 가족으로 아내와의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다.